조합원이 지켜주신 토종 씨앗, 널리 나누렵니다

 

글 박명의 생산자(괴산 솔뫼공동체)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란 말이 있지만, 그보다는 "할 일은 많고 일손은 모자란다"란 말이 더 실감 나는 요즘입니다. 본격적인 장마철은 아니지만 장마에 대비한 일들을 함께해야 하기 때문에 생산지에서는 누구나 바쁜 철이기도 합니다.

토종씨앗을 관리하는 저의 경우는 아직 심지 못한 종자들이 남아 있고, 올 해 파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도 챙겨야 해서 더욱 분주합니다. 적기에 심어 때맞춰 거둬들여야 제대로 된 종자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심어야 할 씨앗 보따리를 들고 나와서도 그날 그날 하지 못한 것들이 쌓이다 보니 시기를 놓쳐 포기하는 일들이 종종 생깁니다. 그러다가 종자를 잃는 경우도 있지요.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그럴 수 있지만 미루다가 못하게 되면 더욱 아쉬워집니다. 어떤 때는 긴장하기까지 하죠. 빠뜨린 것은 없는지...

이렇게 해도 보관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버리게 되는 일이 많았답니다.

힘들게 농사지어 먹지도 않고 아끼다가 쥐가 물어 가고, 벌레에게 먹히고, 습도 관리가 안 되어 썩고, 상온에 보관하다 발아율이 떨어져 파종해도 싹이 안 나고……. 종류가 적을 때는 쉽게 되던 것도, 다양해지고 양도 늘어나다 보니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고민하던 차에 때마침 북부지부에서 토종 씨앗을 생산하고 보급하는 일에 도움을 주신다고 해서 선뜻 대답했습니다. 제가 속한 솔뫼공동체에서도 토종 씨앗 보급이나 관련된 일들에 관심이 많이 있었던 탓에, 북부지부의 지원금으로 보관함이나 기타 도구들을 마련하면 때를 놓칠까 긴장하면서 하던 일들이 많이 해결되고 원하는 분들에게 더 많이 씨앗을 나눌 수 있어서 기뻐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애쓰기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뜻을 알리고 실천하려면 공동체 또는 더 큰 단위에서 풀어야 할 일들도 있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이 아주 좋은 시점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북부지부 소모임 프리마켓팀에서도 힘을 보태주셨습니다.

이 일은 제 일이 아니라 우리의 공동 과제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씨앗을 일부러 받아서 전문적으로 나누어 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이웃에서 얻고 나누어 쓸 수 있는 그날이 올 때까지 제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최근 한살림서울 북부지부가 자매 생산지인 솔뫼공동체에 '토종씨앗 살리기' 기금 300만원을 전달했습니다. 이에 토종 씨앗 지킴이 역할을 해온 박명의 생산자가 감사의 편지를 전해왔습니다.

 

 

햇살과 정성으로 수놓은 편지

 

글 한인숙 햇살나눔봉사단 대표

 

지난 1월, 한살림서울 남부지부의 아동 돌봄 소모임인 햇살나눔봉사단이 한살림 사과 생산자이신 김영숙․이학수님의 자녀에게 회원들이 정성껏 모아온 꿈장학금을 전달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김영숙님이 예쁜 수를 놓은 광목천 일곱 장과 함께 편지 답글을 보내오셨습니다. 우리 봉사단원들 모두 너무 감동해서 눈물이 날 뻔 했답니다. 우리들이 드린 것은 사실 너무나 작은 것이었는데 생산자님은 이렇게 큰 정성으로 답하시니, 참으로 아둔한 우리네 도시 소비자들을 다시금 일깨우시네요. 생산자님이 살아가는 모습의 한 단면을 본 것 같아 많이 배우게 되고, 우리도 좀 더 정성과 마음을 내야 되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고맙습니다. 힘냅시다들!!

 

 

 

아래는 생산자분의 편지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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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나눔봉사단님들께

 

어떻게 고맙다는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요?

얼굴도 모르는 생산자의 아들에게 한살림 가족이라는 이유 하나로 이렇게 고마운 장학금을 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이름처럼 따사로운 '햇살'을 온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주신 장학금은 아들의 학비에 잘 썼습니다.

진작에 고마운 마음을 편지로라도 전하고 싶었는데, 그냥 편지만 보내자니

왠지 허전해서 무명천에 서툰 솜씨로 수를 놓아 손수건을 보냅니다.

‘햇살님’들의 숫자만큼 만들고 싶었는데, 서툰 솜씨에 눈도 침침하고

시간도 많이 지나서 숫자를 채우지 못하고 그냥 보냅니다.

나누기에 또 복잡한 일들을 만든 건 아닌지요?

가위, 바위, 보를 해서 나누셔도 좋구요….

농촌은 또 다시 바쁜 시기가 되었습니다.

일철이 돌아와서 몸과 마음이 바빠 허둥거립니다.

오랜만에 써보는 편지라서 엉망이지요? 이해하실 거라 믿고…

시간이 되면 사과 딸 때 놀러 오세요. 꼭옥~

이름만큼 따사로운 ‘햇살’이 창을 비춥니다.

눈이 부십니다.

 

생산자 이학수, 김영숙 올림

 

 

충남 아산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는 정선섭 생산자가 한해 농사를 지으며, 매 시기마다 땅과 뭇 생명들에게 느끼는 애정과 미안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지면 여건상 원본을 간추렸으며, 전문은 한살림서울 홈페이지(http://seoul.hansalim.or.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벌 나비들아, 미안해

 

글 정선섭 생산자(아산연합회 인주지회)

 

죽어가는 땅을 살리기 위한 농사법을 여러 가지로 시도하면서, 해마다 규모를 조금씩 키워 벼농사를 여러 해째 짓고 있습니다. 값비싼 유기질 비료를 쓰는 대신 녹비 작물(거름풀)인 ‘헤어리베치’ 라는 작물을 심고 기르는데, 추위에 강하고 잘 자라며 분해도 잘 되어서 거름으로 활용하기가 좋습니다. 아쉬운 것은 수입 종자라는 것인데, 자연의 본성에 가까운 방식으로 농사를 짓기에 적합해 공부하며 키우고 있습니다.

 

지난해 가을, 황금색 논 사이사이로 벼 포기들을 힘들게 헤집고 다니면서 거름풀용 씨앗을 골고루 뿌리고 일주일 뒤에 벼를 베어냈더니, 벼 포기 사이에 간신히 살아남은 조그만 거름풀 싹들이 보였습니다. 논바닥 배수가 잘 되어야 거름풀이 잘 자라므로, 날 추워지기 전에 서둘러 도랑도 촘촘히 파주었습니다.

바쁜 가을걷이도 다 끝나고 춥고 긴 겨울이 지나 봄이오니, 삭막해 보이던 논바닥에서 혹독한 추위를 이겨 낸 풀들이 파란색 새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갓난아기 손가락 크기의 덩굴손들도 넓은 논바닥을 덮어 나갑니다.

점점 따뜻해지는 4~5월쯤엔 바나나 모양의 분홍색과 자주색 아름다운 꽃들이 엄청나게 피어납니다. 이슬 내린 늦은 아침 논에 나가 보면, 어디서 그 많은 벌과 나비들이 오는지 바쁘게 꽃 사이사이를 오가며 꿀을 따는 모습에 힘들었던 몸과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반면 관행농을 하는 이웃 논들의 삭막한 회색 논바닥은 생명이 없는 것처럼 쓸쓸해 보입니다.

이 아름다운 꽃논을 오래 보존하고 싶고 뭇 생명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지만, 모내기 준비를 위해 할 수 없이 트렉터 로타리로 풀들을 밀어내야합니다. 벌이랑 나비 비키라고 큰 엔진 소리를 내며 빠른 속도로 밀어 붙일 땐 마음 한편이 씁쓸합니다. 쫓기는 벌 나비들을 기계의 높은 운전석에서 내려다보며 속삭여 봅니다.

 

‘얘들아 미안하다. 내년엔 더 많은 꽃과 꿀을 만들어 줄께. 기다려주렴… 그때까지 다른 곳에서 놀다가 다시 와주면 반갑게 맞이해줄께. 미안하다. 벌 나비들아…….’

 

울긋불긋 환한 꽃들을 기계로 밀어 흙과 잘 섞이게 작업을 하면, 또 어떻게 알고 왔는지 백로떼와 이름 모를 새들이 덩치 크고 시끄러운 기계 뒤를 겁도 없이 총총총 쫓아오며 경쟁적으로 미꾸라지와 곤충들을 골라먹습니다. 여태 벌과 나비들에게 미안했던 마음이 흐뭇한 마음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거름풀을 활용한 안전한 먹을거리 농사를 지으며, 거름풀은 한살림 생산자이고 벌과 나비는 소비자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 한살림 생산자와 소비자가 그동안 서로 배려하는 마음으로 지내왔듯이 앞으로도 더 살기 좋은 세상을 지향하며, 지난해 농사와 소비를 돌아보고 내년에도 더 열심히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에 적어봅니다. ^^

 

2012년 12월 밤, 아산에서

정월대보름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른 달빛 아래서 쥐불놀이를 하고 볏단 속에 기어들어가 숨바꼭질을 하며 놀았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그렇게 밤새 놀다가 배가 고프면 동네 몇몇 집에 살며시 들어가 부뚜막에 덮어 놓은 밥과 김칫독에 김치 몇 포기를 몰래 가져와서 먹으며 놀았다. 대보름 전날은 일찍 저녁을 먹는 날이라 해가 지기 전에 저녁을 먹고 밤이 늦도록 놀았으니 얼마나 배가 고플까 그걸 염려하신 어른들께서 일부러 밥을 넉넉하게 해서 부뚜막에 식지 않게 덮어두시는 것이 일부러 그리 해 두신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설날에서 대보름까지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사랑방에 모여서 윷놀이를 하며 놀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모여서 그저 놀기만 했다. 정월 대보름이 지나면서 농부들은 기지개를 켜고 농사 지을 준비를 한다. 겨우내 눈속에 묻혔던 땅들이 녹기 전에 거름을 내고 과일 나무들은 전정하고 조용하던 골목이 북적거리기 시작한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에 원기를 북돋아주기도 하고 온 가족의 한해 건강을 빌고 액운을 막기 위해 다양한 세시풍속이 펼쳐지는 정월대보름은 다른 명절과 달리 음식과 관련된 풍속이 유독 많다. 부스럼이나 종기가 나지 말라는 의미에서 호두, 은행, 잣, 땅콩 등 부럼을 깨물어 먹기도 하고, 웃어른께 한 해 귀가 밝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데우지 않은 청주(귀밝이술)를 대접하기도 했다.

오곡밥은 겨우내 부족했던 원기를 회복하기도 하고 새로운 한 해의 농사를 위해 몸에게 바치는 제물과도 같은 존재다. 백미와 달리 도정이 덜 됐거나 안 된 곡류를 섞어 짓는 오곡밥은 비타민과 미네랄, 식이섬유가 풍부한 영양식이며 특히 찹쌀은 성질이 따뜻해 소화기능을 돕고 구토와 설사를 멎게 하는 효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차조 역시 위의 열을 없애고 소변을 잘 나오게 하고, 콩과 팥에 부족한 비타민 B군이 풍부한 수수도 몸의 습한 기운을 없애주고 열을 내리게 한다. 그리고 따뜻한 봄의 생기를 머금은 취나물과 여름 햇볕을 담은 명아주와 망초나물, 가을 햇살에 고슬고슬 말린 호박고지를 들기름에 살짝 볶아 먹으면 태양의 정기가 스며들어가 추위에 움츠렸던 몸과 마음이 깨어난다.

대보름 전날 저녁은 오곡밥을 먹고 대보름날 새벽에 일어나 부럼을 깬다. 밤새 놀다가 곤하게 자고 있을 때 어머니께서는 우리를 깨워서 큰소리로 “부스럼 깨물자”, 하고 와자작 소리가 나도록 깨물게 하셨다. 정월대보름 아침 호두와 땅콩 등 부럼을 제 나이 숫자대로 깨물어 먹으면 한 해 동안 부스럼이 나지 않고 치아가 튼튼해진다고 한다. 실제 견과류에 든 나이아신 등은 피부 건강에 이로운 성분이 있으며 호두에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는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하며 칼슘과 마그네슘이 많아 뼈 건강에 좋다. 땅콩 역시 비타민E가 많아 하루 열 개만 먹어도 하루 필요량이 채워진다.

정월대보름 음식을 골고루 잘 먹으면 그 해 여름 더위를 타지 않고 부스럼, 종기도 나지 않고 한해를 무탈하게 보낼 수 있다는 바람은 미신이 아니라 우리 선조들의 참으로 지혜로운 과학의 밥상이다.

  김갑남 생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