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살림댁 밥상머리교육 II_

 

정으로 배부르고 행복했던 횡성에서의 사흘

 

7월 초입에 둘레의 가족 여럿이 횡성에 있는 이은이 할아버지 댁에 다녀왔다. 이은이는 딸아이의 ‘아이스레’ 친구다. 아이가 3살 때 처음 만났으니 벌써 5년이 되어간다. 아이스레는 한살림 안에서 만난 화곡동 엄마들이 ‘아이답게 자연스럽게’를 육아의 중심 가치로 내세워 주로 가까운 동네 산에서 놀며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소모임이다. 아이들이 자라 초등학교에 가고, 산에 갈 나이가 되는 동네의 아이들이 동생으로 들어오면서 학교가 끝난 후에 만나는 형태로 바뀌어 아이스레는 계속 유지되고 가끔은 이렇게 먼 나들이를 다녀오기도 한다.

 

 

 

어린 동생을 안고 업어서 산에 오르는 엄마들을 보며 그 옛날의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 잠시 추억에 잠긴다. 아이스레 안에서 우리가 함께 나눈 아이에 대한 고민과 자신의 성장에 대한 갈망과 그러지 못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야기 하며 우리는 밥을 먹었다. 아무리 한살림 안에서 만났다지만 낯선 도시에서의 인연을 잘 이어가려면 함께 밥을 먹는 게 제일이라 여겨져서다. 아이를 팔에 안고 도시락과 간식이 든 가방을 메고서 ‘편하게 한번 사먹지’ 하는 유혹을 떨치며 산길을 걷다가 배가 고프면 어디에서든 돗자리를 펴고 밥을 먹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엄마 옆에서 꼭 붙어서 밥을 먹더니 좀 커서 자기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며 노는 재미가 들고 나서는 ‘밥 먹고 놀자’를 우리의 구호로 만들어야 할 지경이었다. 밥 한 숟가락 먹고 놀이 한 번 하고 엄마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달려와서 또 한 숟가락 먹고, 내 아이 먹이던 숟가락으로 행여 또 어디로 갈까 하는 급한 맘에 친구 아이 입에 밥 한 술 얼른 떠 넣고…. 아이들은 놀이하면서 친해지고 엄마들은 서로의 반찬을 먹어보며 ‘맛있다. 어떻게 만든 거야?’ 물어보며 난생 처음 매실청도 담가보는 등 살림하는 재미를 쏠쏠히 느끼는 자리였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간에 친정엄마와 언니, 동생의 역할을 해가며 자매처럼 인연의 끈을 단단하게 했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또 어떤가? 내 아이를 비롯해서 아토피를 가진 아이가 두엇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과 과자를 따로 떼놓고 생각하기 어렵지만 과자와 음료수를 가져오지 않기로 서로 약속을 했다. 아토피를 가진 아이에 대한 배려였다. 친구가 먹는 걸 보면 너무 먹고 싶을 테니까 그 친구 앞에서는 먹고 싶은 마음을 참는 연습을 하며 배려를 배울 기회도 되었지만, 과일을 잘 먹지 않던 아이가 도리어 과일을 찾기까지 해서 우리를 놀라게 한 적도 있었다.

 

횡성에서 우리는 두 밤을 같이 잤다. 하루 반나절을 함께 하던 꼬맹이들과 그들의 엄마 아빠 형 누나 동생이 같은 지붕 아래서 잠을 자고 신문지를 펴놓고 밥을 먹었다. 이은이 할아버지는 멀리서 온 손자 친구 가족들을 위해 집에서 키우던 닭을 잡아서 가마솥에서 백숙을 해주셔서 정말 배불리 먹었다.

식구(食口)! 한 집에서 사는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라지만 가족이란 단어가 주는 세련됨과는 거리가 먼 ‘함께 먹는 입’이라는 풀이가 어찌나 촌스럽던지 부러 잘 쓰지 않았던 말이었는데, 생각해보니 혈연과 집이라는 공간만을 강조한 가족(家族)이란 말보다는 함께 먹는 것만으로 남이 아님을 일깨우고자 함이 아니었나 싶다. 이은이 할아버지 집에서 함께 밥을 먹으며 흩어져 살던 7가족이 한 식구가 된 그날의 저녁은 함께 한다는 든든함과 그동안 서로 간에 쌓인 정과 신뢰가 더해져 우리를 더욱 배부르게 했으리라.
 

강영희 조합원

 


일기의 정석은 없다

어떤 글이 좋은 글인가? 첫 번째는 읽으면 곧 알 수 있도록 쓴 글이다. 두 번째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곧 읽을 맛이 나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읽을 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이 세 가지를 통틀어 말하면 ‘감동’이다. - <살아있는 글쓰기> 중에서






언제부턴가 새학기 준비물에서 빠진 아주 중요한 게 하나 있다. 바로 ‘일기장’이다. 필수준비물에서 개인의 선택 사항이 되어버린 일기장이 인권침해라는 이유로 학교 밖으로 밀려난 것이다. 그 후 아이들은 하루를 무엇으로 어떻게 정리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어떤 아이는 자신이 쓴 일기를 선생님이 보시고 댓글을 달아주셔서 참 좋았고, 그 덕분에 더욱 열심히 일기를 썼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제출을 하지 않아서 안 쓰고 있는 상황이다. 선생님과 마음을 주고받고 싶은 아이들의 일기장은 학교 안에서 예전처럼 살아 숨쉬게 하는 게 좋을 듯싶다. 진정으로 아이들의 마음에 귀 기울이고 있는가도 되짚어야 할 듯싶다.

일기는 글쓰기의 기초체력

일기를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일기가 얼마나 대단하기에 남녀노소 상관없이 꼭 쓰면 좋다고 할까? 특히 아이들에게 더욱 강조하는 까닭은 뭘까? 정답은 살아있는 글쓰기의 기초체력이요, 뿌리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쓰면서 생각하는 힘을 자연스럽게 길러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나쁜 어른표 스티커’를주고 싶은 어른들이 있다. 아이들이 솔직하게 쓴 일기를 “왜 이렇게 썼니?” 하면서 지우고 포장을 하게 만드는 어른들이다. 그래서 아이의 글은 재미와 감동이 사라진 거짓글로 재탄생된다. 아이들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자유롭게 쓰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싶은데 말이다. <해리포터>시리즈의 작가 조엔 K 롤링도 어린 시절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꾸준히 쓴 게 훗날 세계적인 작가가 되는 데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축구선수 박지성도 일기를 쓰며 자신의 꿈을 키워 나가고 힘들 때마다 마음을 위로하며 흔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일기는 용기와 믿음, 꿈을 키워주는 대단함을 담고 있는 것이다. 어른이 해야 할 일은 간섭이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잘 쓰도록 응원하는 것이다. 그 사이 아이들은 다양한 생각들이 쭉쭉 뻗어나가고 공부도 집중해서 적극적으로 잘 하게 되고 꿈도 꼭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쓸거리보다 오감각을 깨워야

물질문명과 디지털문화, 방과후까지 학습에 로그인되어 아이들 하루는 바쁘다. 집에서는 아이가 조용히 있으면 잡생각 그만하고 공부나 하라 한다. 밖에 나가면 자동차들의 질주에 정신을 차리고 움직여야 한다. 귀에 꽂은 이어폰은 세상소리에 등을 돌린다. 손에 쥔 휴대폰은 한 곳으로 시선을 고정시켜 놓았다. 마음껏 세상과 놀아야 할 ‘오감각’들을 잠재우고 있는 것이다. 성미 급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쓸거리를 준다. 신문, 경제, 환경, 효도 등등 어떤 주제를 주더라도 내가 보고, 듣고, 느끼지 않은 글은 소리없는 아우성이다. 글 속에 내가 있어야 쓸거리도 많아지고 무엇보다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엄마들은 말한다. “우리 아이는 일기 하나 쓰는데 30분 이상을 생각만 한다”고 말이다. ‘부모도 답답한데 아이는 얼마나 더 답답할까?’라는 상상을 해 보았는가? 마음껏 한 가지라도 스스로 해 보았다면 아이는 짧게라도 한 편의 명작을 남겼을 지도 모른다. 최근에 중학교에 입학하는 아이 덕분에 한국단편소설들을 읽고 있는데 시점에 따라 읽는 맛이 다름을 몸소 느끼고 있다. 주인공시점으로 쓴 글이 훨씬 감칠맛이 나고 재미있다. 그 글 속에 오감각이 살아있는 내가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아이들에게 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글을 쓰게 해주는 게 어른들의 몫이라 본다.

보호되어야 할 아이들의 삶

마지막까지 ‘아이들만이 우리들의 희망이다’라고 하신 이오덕 선생은 “아이들에게 글을 쓰게 하는 것은 아이들의 목숨을 지키는 귀한 수단이고, 사람답게 기르는 가장 좋은 교육이다”라고 하셨다. 아이들이 글감을 정하고, 얼거리를 잡고, 글을 쓰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어른들은 기다리지 않는다. 생각중인 아이에게 글감을 정해주고 이렇게 저렇게 쓰라고 강요를 하면서 결국 엄마의 생각을 쓰게 한다. 아이는 로봇이 아닌데...

제철음식이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해 주듯이 제철교육 또한 아주 중요하다. 마음과 생각이 병들면 결국 몸도 앓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면서 상상하는 어린 아이에게 글씨를 가르쳐 그 상상력을 빼앗고, 그림책을 보는 아이에게 그림 대신 글씨를 손가락으로 짚으라 하고, 일기의 참맛을 느껴보지도 못 한 아이에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논술’이라는 걸 가르치려 하는 욕심쟁이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은 어린 나이서부터 ‘글쓰기는 힘든 거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부끄러운 이야기를 쓴 아이에게 “창피하게 왜 이런 걸 쓰니?”가 아니라 “이런 글이 진짜 글이란다”라고 칭찬을 한다면 아이들도 그 재미에 푹 빠질 것이다. 이 세상에 글을 쓸 줄 모르는 아이는 아무도 없다. 종이에도 쓰고, 마음에도 쓰고, 하늘에도 쓰고, 바다에도 쓰고, 온 세상에 글을 쓸 수 있는 순수한 자격을 갖춘 사람은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마음껏 눈치 보지 않고 보고, 느끼고, 만져보는 이 봄날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란다.

                                                                                                                  글 윤미라  홍보위원

경험 나누기_ 살아있는 생활글

                                                              우리집 명절 백일장

“시제는 설날, 가족, 행복, 공부입니다. 장원에게는 상금 3만원. 여기 똑같이 A4용지를 나눠줄테니 지금부터 30분 동안 시나 산문 등 형식은 자유롭게 글을 써오기 바랍니다. 자, 시작~.” 큰 고모부의 난데없는 제안에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 모두 뜨악한 표정이었다.

지난 설 연휴, 시댁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여느 때처럼 먹고 치우고, 작은 아이들은 텔레비전에, 큰 아이들은 각자의 핸드폰에 폭 빠져 헤어나질 못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려의 한마디씩을 하던 중 갑자기 중학교 선생님이신 큰 고모부가 백일장 얘기를 꺼냈다. ‘과연 아이들이 따라줄까요? 특히 말 한마디 붙이기 어려운 고학년 남자아이들이?’ 솔직히 많이 의심쩍었는데 의외로 아이들은 부모가 아닌 친척의 제안이라는 점과 평소 자주 보던 사촌들과 여서 인지 순순히 받아들였다. 오히려 글을 쓸 줄 아는 유치원생부터 고2까지 모두 8명의 사촌들이 색다른 게임을 하듯 흥분하며 집안 이 구석 저 구석에 자리를 잡더니 어느새 진지하게 백지를 채워가기 시작했다.

글 사이사이에 그림까지 그려 넣는 성의를 보여준 유치원생, 아무런 주저 없이 연필가는 대로 쓱쓱 써내려가는 활달한 아이, 시제를 정하는 것부터 골똘히 고민을 하던 초등학생 아이는 결국 한편의 동화를 만들어냈고, 나눠준 종이 말고 다른 도화지에 다른 펜으로 자신을 튀게 표현하거나 평소에 해오던 자신의 고민과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해낸 사춘기 아이들, 나름 배운 지식을 총 활용하여 운율을 맞추고 행을 가르며, 시어를 고른 고학년 아이들까지... 청중들의 반응도 평가에 참작하겠다고 하여 자신이 쓴 글을 가족들 앞에 나와 직접 낭독을 하게 하였는데 정말 예상치 못한 다양하고 값진 작품들이었다. 어느 한사람 잘 썼나 못 썼나가 중요하진 않다. 무엇보다 그동안 미처 눈치 채지 못했던 내 아이들의 생각과 감정, 각자의 재능과 개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생생한 숨결’이 느껴지는 글들이었기에 부모들의 감동은 물론이거니와 그 의미가 더욱 컸다. 아이들도 친척이라는 편안한 울타리 안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의 부담이 없어서인지 나름 느꼈을 글쓰기의 고충은 뿌듯함과 상쇄되어, 참으로 ‘놀이하듯 즐거운 백일장’이 되었던 것이다.

“일년에 한 번씩, 다음에는 어른들도 모두 참여하기예요~.” 상금 출자도 만만찮고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것은 아닌가 싶으면서도 ‘내년엔 어떤 시제가 나올까’ 내심 기대가 되는 건 뭐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머리 감싸고 끙끙대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글 채나연  홍보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