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지탐방 | Posted by 한살림사람들 2012.04.30 16:49

생산지탐방_ 해남 참솔공동체

소처럼 우직하게 천리를 걸어 생명축산의 길로

 

 

 

 

 

 

2008년 말 한살림에서는 수입산 사료곡물에 의존하는 현재의 축산방식을 지역 자급순환형으로 바꾸기 위한 의견이 모아졌다. 경종과 축산을 결합하는 유기 순환적인 지역농업을 목표로 한살림 육류 생산방식 및 물품차별화 및 사료자급화로 수입 곡물을 줄이고 가까운 먹을거리 실현을 앞당기는 소중한 정책이다. 향후 지역한살림과 생산지 간의 협력을 바탕으로 한 직거래 운동의 활성화 및 자매결연 지역한살림과 생산자공동체의 교류활동이 풍성해질 것인데, 현재 한살림서울은 자매결연생산공동체를 찾는 중이다.


  어렸을 적 쇠고기는 기껏해야 1년에 명절 한두 번, 고기는 몇 점 찾을 수 없는 멀건 쇠고기무국이었다. 쫄깃하면서 감칠맛이 났던 그 고기맛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부터 공업화ㆍ산업화가 급속해지고, 축산 역시 공장식 축산 형태로 항생제와 성장촉진제가 범벅이 된 사료로 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살림은 이러한 공장식 사육의 문제점을 인식하여 개방형 우사와 두당 2.5평 이상의 면적에서 무항생제와 Non-GMO, 성장촉진제 없는 사료만을 급여하였다. 또 한편에서는 2008년부터 지역자급형 축산농업을 시도하는 생산지가 있어 산지탐방을 하게 되었다.

 

두당 5평, 널찍한 우사

전라남도 해남에 자리한 참솔공동체는 김장배추ㆍ무ㆍ고구마ㆍ단호박ㆍ시금치 등의 월동채소를 공급한다. 30~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지역민과 귀농자가 골고루 섞여있다.
  공동체 대표인 김군호 생산자는 소를 키우기 시작한 2008년부터 자급사료 방식으로 소를 키웠다. 손수 지었다는 황토집과 우사가 우선 눈에 띄었다. 우사는 한살림 한우 축산 취급기준인 두당 2.5평 이상이라는 기준보다 2배 정도 더 넓다. 자유롭게 뛰어 놀 수 있어 소들이 활발해 보였다.


우사 1칸당 3마리를 키우면 적당한 공간이지만 3마리를 사육하게 되면 서로 경쟁하여 우두머리와 뒤처지는 소가 생겨 2마리의 소만 키운다. 총 사육 두수는 암소 6마리와 송아지 5마리다. 송아지는 어미소와 충분한 정서 교감을 위해 5개월 이후 분리하여 키운다.


우사는 햇빛이 아주 잘 드는 남향이라 충분한 햇빛이 살균효과를 높이고, 사방이 뚫린 개방형이라 공기 순환이 원활하여 악취가 전혀 없었다. 물은 지하수로 늘 부족함 없이 공급한다.
  질병관리는 연 1회 구충제를 투여하며, 소의 등에 번식하며 괴롭히는 진드기나 이 등을 박멸하기 위해 해충제를 등에 분무기로 뿌려준단다.


  소들은 아침과 저녁, 하루 두 끼 밀기울과 보릿겨를 준다. 쌀겨는 지방성분이 많아 발효시간이 오래 걸려서 발효가 필요 없는 밀기울을 이용한다. 간식은 다양하다. 볏짚ㆍ무ㆍ늙은 호박ㆍ단호박 등 물품공급이 안 되는 것, 무말랭이 부스러기ㆍ콩ㆍ콩깍지ㆍ옥수수, 여름에는 소들이 좋아하는 수단그라스(풀의 일종)등의 풀 사료도 급여한다.

 

국산사료만 급여하겠다는 뜻있는 고집
  하루 두 끼밖에 못 먹어 여느 한우에 비해 조금 말랐다. 비육을 위해 세 끼를 주고 싶지만 농업부산물을 구하기 어려워 그것이 어렵다 한다. 이렇게 사료 구하기 어려운데 국산사료 한우를 고집하고 있는 생산자의 열정에 안타까우면서도 그저 감사할 뿐이다. 사료는 생산자 개인보다는 한살림이 지역단체에 협력을 요청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바닥의 볏짚과 분뇨는 2~3개월에 1번 교환, 6개월 정도의 발효를 거친 후 좋은 거름으로 다시 밭에 뿌려져 밭작물의 생육을 돕게 된다.


  국산사료 한우는 예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해오던 방식이다. 농업 부산물인 짚ㆍ콩깍지ㆍ풀ㆍ각종 쌀겨 등으로 가축을 키우고, 그 가축의 배설물을 발효시켜 좋은 거름으로 만들어 다시 밭에 뿌려 건강한 농작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자연순환 농법이다.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자연순환농법이야말로 기후변화와 이산화탄소 발생 억제, 고유가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고 지구를 위하는 최선의 길이라 확신한다.

박금자 농산물위원

 


한살림이 거꾸로 지으면 모든 것이 거꾸로

 

그는 맨 바닥에 무릎을 꿇어 절했다. 구제역이라는 난리를 치른 몸으로 조합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행했던 모심의 절은,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하는 무언의 의식이었다. 그가 바로 살림의 방식으로 축산농업을 하는 한축회의 영원한 간사, 안상희 생산자였다.

닭보다 먼저 일어나는 정성으로

눈비산마을(전 충북농촌개발회)에서 한살림을 시작했다. 공무원직을 그만두고 어른들 모시며 농사를 짓고 있을 즈음, 조희부 선생(전 한살림서울 감사)의 권유로 목장을 돌보는 사람이 됐다. 그러다가 1990년 고 박재일 회장의 제안으로 눈비산마을에서 유정란을 생산하게 되면서 안상희 생산자도 자연스럽게 닭을 돌보게 되었다. 일본 야마기시공동체에서 배운 농법대로 유정란생산을 시작하였다. 쾌적하기로 정평이 난 눈비산마을의 닭장은 설계부터 남달랐다. 양계장 지붕 각도를 닭날개 휜 각도와 같게 설계하여, 바람이 불지 않아도 대류현상이 일어나 통풍이 잘 되게 지었다. 처음 병아리 350마리와 부화장에서 일주일간 함께 살았다. 그런 정성때문인지 거의 모두 다 살아남았다. 정성이 통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생명이 살아있는 유정란을 조합원들에게 전하는 기쁨은 참으로 컸다. 닭을 돌보면서 새벽잠이 없어졌다. 닭보다 먼저 일어나 물을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던 날들이 2000년 3월까지 이어졌다. 한결같이! 거꾸로, 닭한테 배운 것도 많았다.

한살림축산의 씨앗을 심다

청주에도 거처가 있어 삶의 터를 옮기려다, 나고 자란 땅에서 고향을 지키며 살고 싶어 다시 괴산에 머무르기로 맘 먹었다. 이번에는 닭이 아닌 소였다. 괴산에 소재하고 있는 두레식품과 짝을 이뤄 축산의 한 바퀴를 담당하고자 했다. 그렇게 한살림 이름으로 시작한 한축회는 13년째 그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유정란처럼 축산에도 한살림을 접목시키기 시작했다. 처음에 11농가가 시작했는데, 지금은 소 45농가, 돼지 5농가로 규모가 자랐다. 초창기 참여농가들이 한살림을 잘 알지 못해 살림의 방식을 정착시키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언제나 한살림정신을 강조하고 다녔다. 엄격한 규제를 귀찮아하던 사람들도 점차로 잘 따라주었다. 무언가를 지켜나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지만,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 여긴다. 그런 실천들이 모여 한살림이 되는 것이라 믿는다. 공급의 안정화를 위해 자체 생산안정기금까지 마련할 정도로 마음이 잘 모아졌다.

고기 등급의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

안상희 생산자는 정작 고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단다. 하루 세 끼 밥을 먹지 않으면 큰 일 나는 줄 아는 배가 고기를 별로 원하지 않는 모양이다. 만나는 조합원들에게 고기를 덜 먹으라고 직접 말하기도 하는 그는, 안전한 육고기 공급을 위해 정성을 다한다. 유기농지에 사료로 쓰이는 호밀을 재배하는가 하면, 발효사료 개발에도 힘을 쏟는다. 안전한 사료는 물론이요, 축사의 환경, 무항생제, 방제 등 건강한 축산조건을 위해 동분서주 바쁜 나날을 보낸다. 건강하게 자라는 소는 움직임이 있어 근육이 단단하다. 그래서 건강한 고기는 질긴 것이 지극히 정상이다. ‘고기는 씹어야 맛이 난다’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들이 선호하는 부드러운 고기는 기름기를 함유한 것이다. 기름기가 고루 퍼져있는 정도를 따져 고기등급을 매기는 지금의 방식은 건강을 위한 기준이 아니다. 흔히 말하는 마블링이 많은 고기란 인위적인 방법으로 기름기가 균일하게 퍼지도록 사육하는 것으로, 건강한 소에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급육이란 건강하게 자라 몸에 이로운 고기여야 하지 않겠는가!

한살림은 나의 동반자

소유는 욕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그는 무소유를 택했다. 한축회에 한 푼도 출자하지 않은 것이다. 내 것이라 주장하여 개인의 욕심이 작용하지 못하도록 아예 싹을 자르니, 한축회 일에 더 열심을 낼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정성을 다하면 내 것이 아니면서도 내 것이 된다”는 말을 하는 안상희 생산자는 그렇게 자신을 엄정하게 다스렸다. 구제역이라는 엄청난 일을 치르면서 3개월을 꼼짝도 하지 않고 농가를 돌볼 수 있었던 힘도 그런 지극함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한살림 초창기, 생명학교의 본거지인 눈비산마을에서 한살림 실무자, 소비자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은 독자로 자란 자신에게 정 깊은 가족 같았다. 그런 만남이 참으로 귀해 자신도 생명의 따뜻한 기운을 전하고 싶었다. 그렇게 한살림은 자신의 삶이 됐고, 삶을 마감할 때까지 함께 해도 괜찮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한살림이 거꾸로 지으면, 모든 것이 거꾸로 짓는다”고 생각하는 안상희 생산자는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기도를 나간다. 자신의 삶에 대한 감사함으로 시작한 새벽기도는 원칙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줬다. 눈비산마을의 조희부 선생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는 그는 고향 괴산에서 한살림이 걸어 온 역사를 기록하려고 계획한다. 한살림 조합원들에게는 그저 고마울 뿐이라며, 소비자조합원들이 생산지를 살리는 원동력이라고 힘주어 말하며 더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글 권옥자 홍보위원장